재건부산교회

 

참 빛으로 새 계명을요한일서 27-11(신약388page)

 

우리는 늘 새로움을 갈망하고 살고 있습니다. 옛 계명보다 새 계명을 선호한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새 계명이 옛 계명과 동일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8절에는 다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 속에 담겨있는 중요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계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계명의 대 강령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계명을 실천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죄로 인한 어둠으로 인간은 자기 밖에 사랑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사랑하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면 어둠이 제거되고 참 빛이 들어와야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처럼 신비적 체험을 통해 이데아 세계를 경험하고 영적 지식을 얻어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셔야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타락하여 양심과 본성, 그리고 계명을 통해 알고 있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할 수 없는 어둠에 빠졌을 때,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계명을 순종하셨고, 그 절정인 십자가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몸소 보여주시고 완성한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빛을 받는 자만 온전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 하나님으로 부여받은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보이는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 사랑은 우리의 존재됨의 증명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강조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몸으로 보이는 형제를 구체적인 행함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됨이라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 용서의 문제에도 주님이 말씀하시죠. 형제를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도전하십니다. 이 말씀들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 사랑으로 참 빛이 벌써 비췬 자들인가 하는 점입니다.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은 이런 몸으로 하는 형제 사랑을 헛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악한 세상과 몸으로 관여하는 것을 죄악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 죽은 이 복음을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참 빛이요 진리를 아는 통로인데, 거짓 교사들에게는 허무한 것이라고 주님의 십자가를 모욕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예배, 기도, 토론 등을 중요시 하지만 형제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익숙한데, 실제로는 전혀 구체적인 행함이 없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속에는 본래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주님과 교제하고 교통가운데 간구함으로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진실한 성도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재건부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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