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부산교회

 

자기소견대로가 초래한 비극사사기2113-21(구약400page)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1,2차에 걸쳐 4만명이 전사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대한 보복과 죄에 대한 분노로 베냐민 지파를 도망친 600명을 제외하고 모조리 다 싹 쓸어버렸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칼날로 모조리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가축까지 도살했습니다. 성읍들은 불태워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아말렉을 진멸시키라는 명령에 사울마저도 불순종했는데, 베냐민 동족을 향해 이런 잔인한 짓을 자행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힘겹게 승리하고 베냐민 지파를 파멸시키고 성들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승전 후에 이스라엘 총회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모두 벧엘로 올라가서 방성대곡을 합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방성대곡을 했을까요? 이스라엘의 죄의 결과가 이 전쟁으로 그들에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이 전쟁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금지하신 3가지 맹세를 합니다. 인간의 맹세는 신뢰할 것이 못됩니다. 내 말이 거짓말이면 손에 장을 지지고 하늘을 올라간다고 장담하며 맹세합니다. 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모릅니다. 첫째로 이 전쟁이 끝나기까지 단 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베냐민 지파에게 동조하는 무리로 간주하여 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을 것이며, 주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 맹세가 잘못되었으며, 자신들과 베냐민의 죄로 일어난 죄의 비참한 결과를 보고 이 맹세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방성대곡을 한 것입니다. 형제 베냐민을 향한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분노의 칼날로 베냐민을 진멸시킨 폭력과 강포에 대해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했다면 이 맹세를 파기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잘못된 이 맹세를 합리화시키며 자신들의 죄의 폭력성과 악한 것을 감추고, 베냐민 지파를 살린다는 명목아래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합니까? 왕이신 하나님의 계명이 하나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사회적 규범이 작동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맹세를 파기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딸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기로 저주를 걸어 맹세한 것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므낫세 지파의 길르앗 야베스 지역을 또 다시 칼날로 동족을 칩니다.

순전히 자신들의 딸을 주지 않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 지역을 전멸시키고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길르앗 야베스에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들만 살려 베냐민의 남은 자에게 강제로 결혼시킨 것입니다. 그 처녀의 숫자가 400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하나도 작동되지 않습니다. 이런 죄악을 행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걸림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사기적 형태는 왜 나타나게 됩니까? 사사기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21:25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지 않는 삶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고자 하는 몸부림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삶의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 결혼, 직장, 사업, 자녀 교육, 이사, 휴가, 여행 등 수많은 문제에서 말씀이 구체적으로 역사하고,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이 작동되고 있는가를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전혀 없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8:13을 우리는 마치 우리와 상관없는 구약의 레위기나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성경학자인 스페너는 로마서는 반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로마서 8장은 그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했습니다. 성화의 삶의 가장 핵심적인 진술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으면 살리니”,

14절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삶의 헌장과 같은 규범입니다.

 

부를 통한 자신의 육신의 평안함과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데 시간와 재능과 부를 너무나 아끼는 이 시대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왕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작동되지 않습니다.

 

부와 자기 상황과 여건과 자기 정서를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입니다.

기준을 왕이신 하나님과 그 말씀에 두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외쳐도, 아무리 결심해도, 목이 터지라 말씀을 선포해도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울리는 괭과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주장 의지를 가지고 저항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 소견을 따라 거부해버립니다. 한발짝도 자기 삶의 습관에 대하여 고민하며 저항하며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없습니다.

재건부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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