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부산교회

 

열 정요한계시록 314-22(신약403page)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 살아있는 교회의 표지가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절에 보면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으로 나타나십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아멘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죽기까지 진리를 증거 하신 충성된 증인이셨던 주님과 같이 교회도 참된 진리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에 주님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참된 증거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참된 충성된 증인인 그리스도를 실현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창조의 근본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모든 피조물의 으뜸으로 모든 피조 된 존재들은 그리스도와 관계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조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가 주가 되어 통치하시는 자리에 서 있음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몸된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가 주님과 상관없는 교회가 돼버린 것입니다. 많은 예배와 행사와 활동들 속에서 주님과 관계없는 자기들만의 사연으로 주님과 상관없이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환난이나 박해가 없었습니다. 이단의 공격도 없었습니다. 특별한 죄의 지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함과 부요가 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면, 교회 사이에 거니시는 주님은 라오디게아교회의 상황을 잘 알고 실상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무감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죽어가는 심령도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아납니다.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릅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큰 어려움에 직면해서 낙심 가운데 있다 해도 주님의 말씀만 들으면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믿으려면 화끈하게 믿으라는 방식이 아닙니다. 차가운 것도 뜨거운 것도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미지근함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토하여 내칠 정도로 혐오의 대상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7절에 보면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는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미지근함의 근본적인 이유가 세상이 주는 맛이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혜택에 길들여져 마음이 장악해 버렸기 때문에 말씀에 반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유행에 너무나 민감하고 교회에 오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간증을 들어보면 고난을 견디어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의 그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풍성한 은혜와 감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성공 스토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웃깁니다. 공부를 많이 안했는데 하나님이 합격시켜 주시더라. 그게 간증입니까? 교회를 하나의 휴식처쯤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향한 사랑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인격의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는 거룩한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재건부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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