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장 1-12절(신약55page)
사람들이 네 사람에게 중풍병자의 침상을 메게 하여 예수님께 옵니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힘들게 메고 들고 왔지만 대문 밖에까지 가득 차 있는 사람들과 그 집중도 때문에 대문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차단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을 어떻게 합니까? 이 중풍병자를 뒤쪽으로 돌아가 지붕으로 올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달아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십니다. 어떤 믿음을 보신 것일까요? 우리가 참으로 궁금해 하는 것은 역사하는 믿음이란 어떤 요소를 안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입니다. 현대의학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중풍병을 앓는 친구도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온전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의 신뢰가 이 중풍병자를 기필코 주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 행동하는 역사를 만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람들은 중풍병자에 대한 긍휼의 마음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이 긍휼의 마음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공감하고 중풍병자의 상황을 나의 것으로 삼고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함께 아파하는 이것이 간절함과 절박함을 만들어 내어 믿음의 역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공감의 능력, 긍휼의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은 본인도 참 답답하고 비관되기고 하고 가족도 피폐해집니다. 참 마음이 아파오고 저려옵니다. 눈물이 납니다. 주님께 기도가 절박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땅에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잘 알 수는 없겠지만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주님께 인도하여 주님의 위로와 치유를 간구하는 것이 우리의 해야 할 소명입니다. 복음과 치유의 역사를 위해 우리도 사회의 그늘진 곳에 갇혀 고독과 회한과 소망 없이 사는 사람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공감의 능력으로 긍휼의 마음이 있을 때, 그 영혼을 품고 사랑하고 그 절박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중보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때 행동하는 믿음과 역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장벽을 뛰어넘는 믿음입니다. 역사하는 믿음은 장벽을 뛰어넘는 믿음입니다. 대문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중풍병자를 메고 온 이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뒤로 돌아가 이 중풍병자를 지붕위로 올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지붕을 뜯어내고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내렸습니다. 중풍병자를 메워 온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믿음의 근거를 두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두고 주님께서 하신다는 확신 때문에 이 난관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빌4:13,19을 보시면,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자기 억압과 묶임을 자유케 하는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품성이 넉넉한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