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부산교회

창세기 22:1-19 2015/5/31

하요셉 2015.06.03 10:22 13339

여호와 이레창세기 221-19(구약28page)

 

우리의 신앙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점검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처럼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려움, 그 부분을 건드리면 아무리 아브라함이라 할지라도 폭발할 수 밖에 없는,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다 토해져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을 통해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알던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아들을 죽이라는 끔찍하고 야만적인 일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에셀도 안된다. 이스마엘도 약속의 씨가 아니다. 오직 이삭만이 약속의 씨인데, 결혼도 아직 하지 않는 아들, 죽이라 하는 것은 씨를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과 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이 아브라함 속에 이 시험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이 작동하고 있을까요? 성령 하나님이 아브라함 속에 어떤 믿음을 일으켰을까요? 우리의 경험과 사고를 통해 이 상황을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을 통해 말씀으로 풀어야 합니다. 11:18-19을 보면, 성령께서 이 아브라함 속에 역사하신 믿음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음이라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는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25년이 걸려서 100세에 약속의 씨로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냥 한 노년이 낳은 아들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랍고 큰 복이 걸린 아들입니다. 씨로 그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려 있는 아들입니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하나님의 복의 가장 핵심적 존재가 이삭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들은 번제로 내가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살려낼 것이다는 말씀의 확신위에 아브라함은 선 것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죄악 된 육신 속에 솟아오르는 불신앙과 분노와 불평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입니다. 오직 의인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전 성경적 선언을 실천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 시대에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더욱 더 중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이 밝혀져야 하고, 내 자신이 그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와 이 민족을 살리는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교회는 함께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밝혀 함께 붙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나의 이성적 판단보다, 나 자신의 목숨보다, 내 자식의 성공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하늘의 복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여 불안 속에서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 때에 약속의 말씀을 꺼집어 내어 육신적 소욕을 굴복시키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씀의 순종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조국교회와 이 세계는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 약속의 말씀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 믿음을 통해 되돌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바라크의 축복, 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그것을 나누는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재건부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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