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부산교회

 

용서, 재건의 씨앗마태복음 18 2135(신약30page)

 

용서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죄 용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본질에 해당되는 것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에 일곱 번을 일흔 번씩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 용서를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나 삶에서 용서해야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도 우리를 용서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 권면합니다. 4:32에 보면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용서를 우리 힘으로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심같이 우리가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는 것은 490번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용서는 인간의 율법과 도덕과 양심의 세계를 초월한 영원하고 무한한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용서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반복해서 같은 죄를 짓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 받은 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가 용서받은 것을 말합니다. 한 사람과 그 물건의 가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이 지불 되었는가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이기 위해 지불되어진 용서의 대가가 얼마나 큰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비유로 일만 달란트 비유입니다. 그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용서할 수 없는 분노와 미움 등은 백 데나리온의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것을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용서받은 사람들이 백 데나리온의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고 결론으로 35절에 보면,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 감정과 영적인 감옥 속에 가두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사실상 저주입니다. 자신을 이 저주에 가두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의 용서는 교회를 놀랍도록 회복시킵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부흥시킵니다. 진정한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이 구가되면 세상은 교회에 놀랄것이고, 세상은 죄의 권세를 끊고 하늘을 여는 이 교회에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맡길 것입니다. 이런 교회로 우리 모두가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재건부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강정우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홍곡중로 23번길 1호

TEL 051-441-6000  E-Mail jaegunbusan@hanmail.net
Copyright jbusan.org. All rights reserved.